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이 다큐를 본후 펑펑 울었다.
너무나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서였을까.
내 품에 안겨 하늘나라로 간 미니가 생각나서였을까.
흐르는 눈물을 닦을 사이도 없이 주책맞게도 많이 울었다.
사람으로 치면 여든살이 넘은 개. 17살 대부.
안내견으로써의 삶을 살다 은퇴후 3년이 지나서 병마가 찾아온 개.
난 이분의 남편이 말한 것이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더라.
사람의 편의대로 개의 본능을 다 죽여놓고 오로지 하나의 목적으로만
조련되어지는 개. 안내견.
꼭 필요하지만 그래도 왠지 불쌍하다.
내 첫 강아지인 미니가 오버렙이 왜 이리 되던지......펑펑 울었다.
아주 어렸을때 우리 시골에 큰 세퍼트가 있었다.
유치원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했던 나기에 아직도 생각나는데 장난친다고
세퍼트 코를 만졌던 기억이나고 그뒤에 정신 차린곳은 병원이었다.
지금도 내 양팔엔 당시에 물렸던 자국이 남아있다.
그래도 정신 못차렸는지 난 강아지를 지금도 좋아한다. 아니 동물을 좋아한다.
혹 그당시에 개의 DNA가 들어와서였는지 동네 강아지들도 날 잘 따른다.
사납다고 만지지 말라는 개들도 만지면 순해지고 꼬리흔들며 좋아한다.
학창시절땐 집에서 부모님이 반대가 너무커 강아지를 키우지 못했다.
독립하고나서 밤일을 하다보니 그것 또한 여의치못해 못키웠고
군대를 다녀온후 작은아버지 회사에 일을 할때였을까.
공사판 한쪽 구석에 큰 드럼통이 있었다. 우린 주로 남은 페인트를 처분하는 용도로
사용했던 곳이었는데 퇴근을 하려 사무실 문을 잠그고 나가는데 낑낑 거리는 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어떤 놈인지 년인지 포매라이언을 그 통속에 넣어두고 갔다.
그 조그만늠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온 몸에 페인트 칠을 하고
날 보는 그 눈을 아직 잊을수가 없다. 사람에 대한 불신이었을까. 굶주림. 분노...
손을 물리고 할퀴고 짖고 안나오려고 발버둥을 치는놈을 꺼내어 택시를 타고 시내
큰동물병원을 대려갔다.
장애가 있는 아이라고 했다. 뒷다리 한쪽을 심하게 절더라. 정신없이 뛰어서 오느라
미쳐 확인 하지 못했었다.
교통사고가 난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이미 뼈가 굳어버려서 수술도 안된다고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정 버리려면 사람들 많은곳에 버리던지
우리 회사는 산을 깍아 만든 큰 야적장 같은 곳이었기에 오고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곳
이었는데 어떻게 거기에 버릴생각을 할수가 있나.
그렇게 내 생에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게 됐다.
스스로가 장애가 있다고 인지를 했었는지 혹은 자기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해서 다시는
그렇게 되지 말자 생각해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성격이 좋아서였는지......
하숙집(당시엔 어려서 돈이 없었다 ㅡㅜ)에 대려간 그 다음날부터 날 너무 잘 따랐다.
애교도 잘 부리고 부를 이름이 떠오르질 않아 그냥 미니라고 불러줬는데도
용케 잘 알아듣고 안기고 그 좁은 방을 이리뛰고 저리뛰며 잘 놀았다.
아침6시출근 오후5시퇴근 그러나 관리직이라 저녁 9시까지 도면을 보며 일하는 나기에
난 괜찮은데 미니에게 너무 미안했다. 어디서 보니 라디오를 틀어놓고 TV를 틀어주고
자동급식기를 설치하고 하면 좀 낫다고 해서 그렇게 해줬음에도
늦은시간 퇴근하고 돌아오면 어찌나 반갑게 맞아주던지...안쓰럽더라.
그러다 어느날 항상 그렇듯이 동물병원에들려 강아지 통조림을 사고(당시엔 동물병원
에서만 통조림을 팔았다) 정육점을 들려 곱게 갈은 고기한근을 사들고 집을 들어갔다
사료와 고기를 볶아서 섞어서 먹였다. 약했기때문에.
평소같으면 집 대문을 여는 소리만 듣고도 나인지 알고 짖는 아이가 그날따라 조용했다.
불안한 예감이 들어 방으로 뛰어들어가 문을 열었는데 아이가 없다.
여기저기 다 찾아봐도 없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니 주인 아주머니가 내려와서는
말씀하시더라.
하숙집 아주머니가 낮에 멀 정리한다며 방문을 열었는데 강아지가 쏜살같이
뛰어나가더란다. 잡으려고 했는데 너무 빨리 나가서 못잡았다고 그래도 몇달 있었기에
집은 찾아오겠지 했단다.
신발도 채 신지 못하고 뛰어나갔다. 온동네를 다 찾아 다녔다.
그날 내 기억에 동이 터올때까지 그 조그만 동네를 다 뒤졌던걸로 기억한다.
결국 못찾고 잠깐 방에 누웠는데 그게 어디 잊혀 지겠는가.
회사에 일때문에 일주일정도 못가겠다고 통보아닌 통보를 하고
몇날 몇일을 찾으러 다녔다.
휴가가 거의 끝날즈음 그래 오늘 하루만 더 찾고 없으면 누가 대려갔나보다고
생각하자라고 맘먹고 평소엔 잘 가지않던 도로변을 걷고 있었다.
그 동네가 한참 개발중인 동네여서 큰 트럭들이 아주 많이 지나가는 도로였다.
거기서 봤다. 로드킬 당한 아이를. 무섭다. 더럽단 생각이 않들더라.
입고있던 겉옷을 벗어 맨손으로 다 주워담았다. 눈물을 쏟으며 주워담았다.
집으로가 그 아이때문에 산 라디오며 사료 고기 밥그릇 개껌 담요 방석 다 챙겼다.
뒷산으로 올라가 그 아이를 묻고 그자리에 주저앉아 소주를 마시며 그렇게
울었던 생각이 난다. 그게 내 첫 강아지 였다.
이 글을 보는 여러분. 그 아이가 죽은지 10년이 넘은 지금에도 가끔 난 그곳을 갑니다.
서울에서 충청도까지 몇년에 한번씩은 가봅니다. 최근에 갔을때 어느세 개발이 많이
진행되어 이미 그 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가까운 가게에서 소주한병은
사들고 그 자리일꺼라 생각되는곳에 뿌려주고 옵니다.
미천한 짐승이지만 내가 그 아이에게 쏟았던 정, 그 아이가 나에게 알려줬던 정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요즘 반려동물을 키우는 분들이 많은데 제발 책임지지
못할꺼면 키우지 마세요. 병들었다고 나이가 많다고 똥오줌 못가린다고
때리고 차고 버리고 하지 마세요. 단지 몇십만원에 산 내 물건이다 라고 생각치 마세요.
돈으로 산 물건이 아니라 평생 같이 가야할 친구 또는 가족을 얻은 겁니다.
저 영상을 보는 내내 미니생각이 간절했다.
그 뒤로 강아지를 키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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